순창박씨(淳昌朴氏)

관향조 간의 손자 천복(天福)은 조선(朝鮮)에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고, 천복(天福)의 아들인 학례(鶴禮)와 손자 기남(奇男) 두 부자(父子)는 통정대부(通政大夫:조선 때 문관 종친 의빈의 정3품 관계)에 올랐으며, 구대(球大)는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는 등, 관계(官界)에서 그 이름과 세력을 떨쳤다.  특히 근체시(近體詩:고체의 시에 대하여 오언, 칠언 절구, 율시 등을 일컫는 말)에 능하여 청()나라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진 문규(文逵)83세의 고령(高齡)으로 개성별시문과(開城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임금의 특명으로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등용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호군(護軍:고려의 무관직으로 공민왕 때에 장군을 개칭한 이름, 4품의 벼슬. 조선의 무관직으로 오위에 속해있던 정4품의 벼슬)을 지냈다. 현재 남한에 582가구 1.817명이 살고 있다.

순창박씨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