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박씨(平澤朴氏)                                                                                                                                   

1. 관향조 박지영(朴之永)의 선조는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사대대군)의 후손이라고 하나 기록이 없어져 박지영이 조선 시대에 평택현사를 지내고 그의 아들 박산이 형조참판으로 1456년(조선 세조 2년) 경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평택으로 하였다.

 

2. 평택 박씨(平澤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다섯째 아들인 사벌왕(沙伐王) 언창(彦昌)의 후예로  지영(之永)이 조선조(朝鮮朝)에서 평택 현사(平澤縣事)를 역임하고, 그의 아들 영산(永山)이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내다가 1456년(세조 2) 단종복위(端宗復位)사건에 연루되어 그 곳에 살면서 선조(先祖)의 임지(任地)였던 평택(平澤)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으며 지영으로부터 기일세(起一世)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家門)을 빛낸 인물로는참판(參判) 영산(永山)의 아들 3형제가 모두 현달(顯達)하여 가문의 3대인맥(三大人脈)을 이루었는데, 맏아들 문창(文昌)은 정랑(正郞)을 역임하고 참판(參判)에 추증되었으며, 둘째 문원(文遠)은 진사(進士)를, 막내 문홍(文洪)은 정랑(正郞)을 지냈다.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인원(仁元)과 인형(仁亨) 형제는 문창(文昌)의 아들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른 계장(繼章)과 함께 이름을 떨쳤으며, 감찰(監察) 희욱(熙郁)은 오위장(五衛將) 제균(齊均)과 더불어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살렸다.

3. 현재 남한에 202가구 629명이 살고 있다.

 

항열 표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항렬자
行列字

세(世)

윤(潤)

장(章)

경(慶)

재(載)

인(仁)

시(時)

주(柱)

철(喆)

균(均)

상(商)

순(淳)

래(來)

치(治)

평택박씨 계보

사벌대군릉과 영사각(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