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박씨(晋州 朴氏)

관향조 박화규(朴華奎)는 진주군(晋州君)에 봉해 졌다고 하나 시기는 알 수 없다. 밀양박씨(密陽朴氏)와 동원으로 전해오나, 문헌이 없으므로 세계, 본관의 유래를 알 수 없다  경상남도(慶尙南道)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거열성(居烈城)인데 통일신라 문무왕(문무왕: 제 30대 왕, 재위기간: 661 ~ 681)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康州)로 고쳤다가 뒤에 청주(淸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다시 강주로 환원하였고, 995년(성종 14)에 진주(晋州)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뒤 조선조에 와서는 진양 도호부(晋陽都護府)가 되기도 하였으나 진주목(晋州牧)으로서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그 후 여러 변천을 거쳐 1949년에 진주시(晋州市)가 되었다.

 효행으로 박래효(朴來孝)는 무동(武東)의 8세손이며, 자(字)는 사유(四乳)이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돈독(敦篤)하였고 아버지 나이 68세에 이질(痢疾)병에 걸려 오리와 토끼가 신효(神效)하다 생각하니 오리와 토끼가 스스로 다가왔고 눈(雪)속에서도 언 감귤이 반드시 구해지고 자신이 대신 아프기를 하늘에 빌어 드디어 회생되었다가 82세에 졸(卒)하여 복상(服喪)함이 예를 지냈고 종신(終身)토록 초종(初終) 장례 때처럼 사모하였다.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가 세워지고 아들 경하(暻厦)․문하(文厦)․치하(致厦)가 다 효행(孝行)이 있었다.「朴來孝武東八世孫字四乳自幼愛親篤至親年六十八病痢思喫鳧兎鳧兎自至雪艾冰柑隨求必致祈天願代遂回甦八十二而卒服喪逾禮終身致慕如初終聞于朝旌閭有子暻厦文厦致厦皆有孝行」

현재 남한에 816가구 2.519명이 살고 있다

 

1. 항열표

2. 진주박씨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