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鮑石亭)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천성(天成) 2년(927) 가을 9월에 견훤이 근품성(近品城)을 공격하여 불태우고 진격하여 신라 고울부(高鬱府)[현재의 경북 영천시]를 습격하고 신라 수도 교외에 가까이 이르니 신라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겨울 10월에 태조가 군사를 출동시켜 원조하였는데 견훤이 별안간 신라 서울에 들어갔다. 그때 신라왕(경애왕)은 왕비,후궁, 친척 등을  데리고 포석정(포석사:신라 시조왕과 신라왕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곳)에 국가 안위(安危)를 기원하기 위하여 제(祭)를 올리고 있을 때 권훤의 적병이 이르자  [왕은] 부인을 데리고 성 남쪽의 별궁으로 돌아왔고 여러 시종하던 신료와 궁녀, 악사들은 모두 침략군에 잡혔다. 견훤은 군대를 풀어 크게 약탈하고  왕을 죽이고 궁중에 들어가 왕의 집안 동생 김부(金傅:경순왕)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런 후에 왕의 동생 효렴(孝廉)과 재상 영경(英景)을 포로로 잡고 국가 창고의 진귀한 보물과 무기를 취하고, [귀족의] 자녀, 백공 중 기예가 뛰어난 자 등은 스스로 따르게 하여 돌아같다.

 

태조는 정예의 기병 5천 명으로써 견훤을 공산(公山)[현재의 대구 팔공산] 아래에서 맞아 크게 싸웠다. 태조의 장수 김락(金樂)과 숭겸(崇謙)이 전사하고 모든 군사가 패배하여 태조는 겨우 몸만 빠져 나왔다. 견훤은 승세를 타고 대목군[현재의 경북 칠곡군 약목면]을 빼앗았다. 거란의 사신 사고(裟姑), 마돌(麻) 등 35명이 왔으므로 견훤이 장군 최견(崔堅)을 시켜 마돌 등을 동반하여 보냈는데 바다로 배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바람을 만나 당나라 등주에 도착하였다가 모두 살륙당하였다.
당시 신라의 임금과 신하들도 쇠퇴해진 국운을 다시 일으키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우리 태조를 끌어들여 우호를 맺어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견훤은 나라를 빼앗을 마음을 가졌는데 태조가 먼저 취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군대를 이끌고 왕도에 들어와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러므로 12월 어느 날에 태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