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혁거세 왕릉(오릉:사적 제 172 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오릉 시향은 매년 춘분. 청명. 추분**

(한자로된 원문 : 五陵 辨)

다섯 무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 왕과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초기의 네 박씨 임금과 혁거세왕은 왕후인 알영왕비의 능으로 전해 온다. 오릉은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경주시내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시대 신라고분과 같이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형 봉토분이며 담암사 북쪽에 있다고 옛 문헌에 전하고 있다.. 남쪽에 있는 숭덕전은 혁거세왕의 제향을 받느는 제전으로 본래 조선 세종 11년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렸다. 현존하는 건물은 선조 33년에 재건하여 숙종 20년에 수리한것이며, 경종 3년에 숭덕전으로 사액되었다. 경내에는 영조35년(1759)에 세운 혁거세왕과 숭덕전으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다.또한 이곳은 신라 박씨의 시조인 혁거세왕의『삼국유사』에기록된 건국신화가 전해오고, 숭덕전 윗편에는 알영왕비의 탄생지인 알영정 터가 있다.

오릉에 대하여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하고 있는 바, 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만에 승천하였는데, 그 7일 뒤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고, 이때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흩어진 유체를 모아서 장사 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다섯 유체를 각각 장사 지내고 '오릉'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사릉'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또한가지 .박혁거세왕이 나이가 무척 들었을 때였다.  이상히도 밤마다 어딜 다녀 오는 것을 알영부인은 상당히 의아해 했다. 왕을 믿지만 밤마다 호위도 없이 나가는 왕에 대하여 걱정을 했지만 왕이 나갈땐 꼭 말방울 소리가 들렸는데 말발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왕비였지만 왠지 걱정과 의혹으로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비는 도술가를 불러 자초지정을 이야기한 다음 대책을 물었으나, 도인은 국왕과 연관된 일이라 하며 발뺌을 하였고 부인은 할수 없이 도인에게 무슨생각을 하였는지 미물로 변하는 도술을 가르켜달라고 요구하였고 그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인은 왕비에게 미물로 변신하는 도술을 가르켜 주었다.

어느날 밤 왕은 또 말방울 소리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었다. 부인은 배운 도술로 재빨리 미물로 변해 말에 붙었다. 말은 순식간에 왕을 태운채 하늘로 솟더니 천상에 도착하였다. 옥황상제는 예는 갖추는 왕을 아주 반갑게 맞아 풍악을 울리고 왕과 함께 주연을 베풀면서 담소와 기쁨을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옥황상제가 "이보시오, 어찌 하여 이곳에 인간을 데리고 왔소? 인간을 데리고 오면 안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했으나 왕은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옥황상제는 말을 데려다가 빗질을 시키니 한미물이 떨어지더니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바로 알영부인있다. 그녀는 옥황상제에게 용서를 빌며 왕과의 친분을 변치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의 노여움은 가시지 않고 알령부인은 다시 인간세계로 보내졌다. 그 다음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궁앞에 왕의 몸이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져 널려 있었던 것이다. 곧 장을 치른후 왕의 시신을 모아서 왕릉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커다란 폭음과 함께 왕릉이 폭발하며 왕의 시신이 나와 널려졌다. 그런 일이 있자. 신하들은 궁리끝에 왕의 시신을 각 부분으로 나누어 다섯 개의 능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하고 곧 그능이 오능이라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