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마왕본기(지마왕본기 시향은 매년 청명 )                                                                                                              자료교정: 박현구

계축(癸丑)원년에 비김씨를 봉하여 애려왕후를 삼고 왕은 친히 시조묘에 제사 지냈다.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수교해 왔다. 을묘3년에 가야군이 남쪽 변방을 침범해왔다. 칠월에 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에 나셨다. 황산하 낙동강하류를 건널 때 적의 복병에게 포위를 당하였으나 왕은 군사를 격려하여 포위망을 뚫고 회군하였다. 을축13년에 말갈 사람이 북변에 침입하고 가을에 또 대령책을 습격하고 니하를 지나 계속 침략해 옴으로 왕은 백제에 구원을 청하였다. 백제에서 오장군을 파견하여 돕겠다고 하자 적들은 이말을 듣고 물러갔다. 갑술22년 8월에 왕이 돌아가시고 후사가 없어 유리왕의 장(長子)일성이 왕이 되어 지마왕을 국도남 쪽 10리 포석정건지동 을좌언덕에 장사 지냈다.

2.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리

신라 제6대 지마왕의 무덤이다. 지마왕은 신라 제5대 파사왕의 아들로 태어나 112년에 왕위에 올라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무덤의 외형은 비교적 규모가 큰 원형봉토분으로 남산에서 뻗은 경사면을이용하여 일단 높은 곳에 만들었을 뿐 아무런 특징이 없는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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