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성왕봉기(逸聖王本紀)                                                                                                                                               시향은 매년 청명

을해원년(乙亥元年)에 석씨(昔氏)로 왕비(王妃)를 봉(封)하고 왕(王)은 친(親)히 시조묘(始租廟)에 제사(祭祀)지냈다. 계비허씨(繼妃許氏)는 정안왕(正安王)의 딸이다. 정축삼년에 말갈(靺鞨)이 장녕(長嶺: 강릉부근)에 침입하여 오책(五柵)을 태워 버렸다.무인사년 사월에 정사당(政事堂)을 금성에 설치하였다. 기묘오년에 말갈이 장녕을 습격하여 백성이 노약질을 하였으므로 목책(木柵)을 장령에 세워 방비하였다. 갑신신년에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제방을 수축(修築)하고 전야(田野)를 개척하게 하였으며 또한 백성들이 금은주왕(金銀珠王) 쓰는 것을 금지하였다. 무자십사년에 박아도(朴阿道)를 봉하여 갈문왕(葛文王)을 삼았다. 갑오 20년 2월에 왕이 돌아가시고 태자아달라왕이 서서 일성왕을 국도남쪽 칠리 해목령 아래의전동 묘자 언덕에 장사 하였다.

2. 일성왕릉(사적 제173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신라 7대 일성왕(134∼154, 재위)의 무덤이다. 일성왕은 일석이사금이라고도 하며, 왕으로 있는 동안 북쪽 변방으로 입하는 말갈을 막았다.특히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며 식량은 백성들이 가장고귀하게 생각하는것이므로 모든 주 군에서는 제방의 수리를 완전하게 하여 논밭을 널리 개척하게 함으로써 농본정책을 폈고, 백성들이 금은주옥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게 하여 사치를 못하도록 하였다.무덤은 밑뿌리에 돌을 돌려 무덤을 보호하도록 했고, 위로 흙을 쌓아 만든 원형봉토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