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묘(耳山廟: 소재지: 전북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회덕전(懷德殿)

                                 약  도

국조단군 . 조선 태조. 세종. 고종.

독립 운동가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

1. 회덕전: 고조선 단군. 조선 이태조.세종. 고종

2. 영모사: 충정공 박심문.문장공 박계현외 39인

3. 영광사: 송병준외32인 위패를 모시고있는 사당

4. 향   사: 매년 음력 3월 12일

5. 2005년 향사 시진보기

 

영모사(永慕祠)

 영광사(永光祠)

외삼문(外三門 )

이산 정사(精舍)

대한 광복 기념비

이산묘(耳山廟: 비지정문화재)                                                                                                                            진안군청 internet에서 발췌
마이산은 속금산(束金山)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진안군지등  이 지방의 문헌에 조선의 이태조가 명명 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즉, 태조가 등극하기전 꿈에 한 신인으로부터 장차 삼한 강토를 재라는  금척을 받았는데  나중에 운봉지방에 침범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하는 길에 이산에 들러보니 경치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았던 자리와 흡사하여 신기하게 여기고 속금산이라고 명명 하였다는 것이고  이 사실은 왕조의 악장에  '몽금척' 이라는 가사로 실려있다 한다.  이 일은 이 지방에 파다하게 전해 내려와 마이산이 이태조의 주필지(머물은 곳)라는 사실에 이 지방 사민(士民)들의 자긍심이 서려 있었다.
 여기에 한말의 거유 연재 송병선이 마이산에 놀면서 고을의 여러 선비들과 용암에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마이산에 올라 쌍계수석(雙溪水石)이라는 표제를 남기기도 하였다.
 또 마이산은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할 때인 한말에 호남지방의 최초 '의병창의동맹지'로서 성화를 치켜드는 진원이 된다.  즉 1909년 정제 이석용, 오병선, 허윤조 등이 '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하여 마이산 용암에 제단을 차려놓고 소를 잡아 산신에게 제사 지내고 조국광복의 대업을 스스로 맡아 꼭 완수 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맹세한 것이니 이로써 호남최초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연재와 면암 두분선생을 흠앙하는 이 고을 선비들은 1924년 여름에 모여 선왕의 주필지요, 항일독립운동의 진원지요,  연재와 면암 두분 선생의 자취가 서린 이곳을 경건히 모시고,  존현의 의의를 살린다는 뜻으로 석벽에 주피대라는 세글자를 크게 새기고 경향의 여러 고을에 통문을 보냈는데 동년 12월18일 공주의 숙모전에서 열린 경향의 유림회의 때에 이 고을 오채열의 발의로써 마이산에 사당을 짓고 봄, 가을로 제사를 올리겠다는 뜻으로 유림들의 결의가 있었고,  모성공회에서 전국의 향교, 서원에 통고 하였으므로 1925년 주필대의 서쪽에 이산정사와 이태조를 제향하는 회덕전을 지어 제향을 지내게 되었으나  당시 일제의 탄압과 박해가 심하여 제향을 받드는 선비들의 고통과 희생이 막심하였다.
 다행히 1945년 조국 광복이되자  1946년 9월에 이산사 중건임원이 조직되어 이산묘의 중심건물인 회덕전을 완공하고 국내 여러고을의 동의를 얻어 회덕전에는 단군 성조와 세종대왕을 추가로 모시고, 회덕전 아래에 동서의 두 사우를 지어 동쪽은 영모사라하여 조선개국 이래의 명유 40위를 모시고 서쪽은 영광사라하여 고종 을사년이후 연재, 면암 및 순국하신 선열 34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처소로 삼았다.
 한편, 고종황제의 위판은 옥구군의 해종전에 있었는데  일제의 훼철을 당하여 임시로 전주의 건지산에봉안 하였다가 전주 및 열군의 사론이 회덕전에 봉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여 1948년 가을에 회덕전에 옮겨서 봉안하니 모두 4위가 된 것이다.
 또한,  이산묘에는 1949년에 이산묘 원장으로 선출된 이시영 부통령의 친필인 이산묘 현판이 외삼문에 걸려있으며  독립기념비각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휘호로 된 '대한광복기념비(大韓光復紀念碑)'가 새겨져 있고,  백범 김구선생의 '청구일월대한건곤(靑丘日月大韓乾坤)' 이라는 글귀가 개울 건너편 은선동 바위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