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박씨(麟蹄朴氏)  족보를 찾습니다. 박씨문화원 010-2402-5477

관향조(貫鄕祖) 율(律)은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세자(世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彦枕)의 손자(孫子)로 전하고 있으나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고, 다만 그가 고려조에서 벼슬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인제군(麟蹄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손자 통(通:초명은 천흘)이 고려 때 영암군(靈岩君)에 봉해진 연유로 후손들이 율(律)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고 영암을 관향(貫鄕)으로 삼게되었다고 한다. 통의 아들 박광(朴光)은 천호 벼슬 을 지냈다. 박광의 딸이 이성계(李成桂)의 조부 춘(椿)에게 출가 한 후 조선이 개국되자 춘은 도조로 추존되었다, 그후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창업(創業)에 공(功)을 세우고 조봉대부(朝奉大夫)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오른 생(生:영암군 통의 현손)의 맏아들 봉룡(鳳龍)이 조선 초에 판서(判書)를 지냈고, 후손 환(煥)은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여 중추부사(中樞府事) 중삼(重三).도훈(道勛), 부호군(副護軍) 달인(達寅) 등과 함께 가문을 일으켰다.

지명유래: 강원도 중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는 저족현(猪足縣)이었고, 현의 소재를 서화에 두었다. 통일신라 때에는 희제라 고치고, 양록군(楊麓郡)의 영현(領縣)으로 삭주(朔州)의 관할 밑에 두었다. 고려 때 인제로 개칭되어 처음에는 춘주(春州 : 춘천)에 속하였다가 후에 회양(淮陽)에 속하고, 1389년(공양왕 원년)에 현으로 승격시키면서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현의 소재를 인제로 옮기면서 현감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춘천 유슈군(留守郡)이 춘천부(春川府)로 승격되면서 이에 예속된 인제현이 되었으며, 1896년에 인제군(麟蹄郡)이 되었다. 현재 남한의 92가구 264명이 살고 있다.

집성촌: 남 문천군 명귀면 신천리, 덕원면 춘성리     함남 문천군 문천면 일원       함남 영흥군 순령면 경암리

인제박씨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