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암(朴孝암)

묘소 및 신도비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박효함[1387년(우왕13) - 1454년(단종2)]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충주이다. 성균진사로서 후에 병조참의에 증직된 박진의 아들이다. 조부 박광리는 민부의랑으로서 개성 소윤(小尹)을 세번이나 하였는데, 공정한 판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조부는 무수동에 살던 합천이씨 이춘계(전리정랑)의 사위가 되었고, 부친 박진은 이 지역의 거족인 부안박씨 박임건(고려전서)의 사위가 되었다. 이러한 연혼으로 인하여 충주 박씨들이 이 지방(괴정동)에 와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효암의 4형제의 이름은 각각 효·제·충·신이 들어가도록 지었다. 이는 아버지 박진이 아들들이 아름다운 일을 지키게 하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박효암은 효재를 다하고 청렴하고 정직하며, 다스리는 제주가 있다. 1430년(세종12) 충청도 보령에 해적의 침입이 우려되어 조정에서 여러번 이를 다스릴 사람을 찾았으나 적격자를 얻지 못하였는데, 박효암이 청렴결백하고 행동이 지극하다 하여 천거되었다. 이에 박효암은 순찰사 최윤덕과 감사 박안신과 더불어 성의 동쪽 1리쯤에 당산의 양지바른 곳을 찾아 성을 쌓았다. 두달이 안되어 성이 완성되니 백성들은 적은 노력으로 도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박효암은 이듬해 청주목사가 되어 공적이 많아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그후 얼마 안되어 조정에 돌아와 첨추가 되었고, 다시 강릉 대도호부사로 임명되어 나갔는데 1454년 관청에서 죽으니 향년 68세였다.

 임금은 부음에 애도하였고 특별히 예장케 하였으며, 청백리라 하여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대덕구 삼정동(정당촌)에 있고, 서거정이 지은 묘비(1880년, 정조 24)가 세워져 있다. 현재 남한에 506가구에 1.581명이 살고 있다